용담면 황산(黃山)

  • 작성자 : 문화관광과
  • 등록일자 : 2001-09-28
  • 조회 : 1558
  • 읍면

    용담면

이 마을은 이조 말엽 당시의 세도가(勢道家)인 민

(閔)씨들이 조상의 능(陵)을 만들고 선마을이라 불렀

으며 삼천서원(三川書院)을 건립하여 인근의 유생(儒

生)들이 이곳에 집거(集居)한바 있었다. 그런데 그후

대원군때 전국의 서원(書院)을 정비 탄압하게되매 이

곳 삼천서원(三川書院)도 폐원(廢院)되고 불타버렸다.



서원(書院)은 불타 버렸지만 일부 유생(儒生)들은

이곳에 남아 고개넘어 황토흙이 많은 동네로 옮겨 살

았는데 이곳을 "황산벌"이라 하고 마을명칭도 여기서

유래된것이다.



황산마을은 주산에서 마을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묘방에서 내려온 좌선룡이다. 계방과 축방에서 물

이 들어 온다. 건방과 해방의 물이 신방과 술방으로 모여들고 미방으로 물이 나간다. 이를 사고(四庫),

사금수(四金水)라 하여 흉한 물로 친다. 혹간 독한 약물을 마시고 위태로운 이가 있을 수 있다. 수태

연살이 있으므로 갑방에서 흙을 파 구멍이나 있고 정방 들판이 좋지 못하여 악성피부병 환자가 나타날

수 있다.



동쪽에는 금어쾌수형의 대명당이 있다. 이는 간룡에서 갈려 지룡으로 내려와 자미입수가 되었고 양

생방의 득수가 되어 있으며 산과 물이 모여들어 공손하게 절하고 있으며 장사간문이란 수구가 되어 있

다.



삼양당기가 광대하여 남궁방이 아름답게 단청하고 임곤산이 아름다움을 구비하고 있으니 미색의 여

인이 귀인이 되어 왕비가 되고 세 번 일어서고 세 번 패하는 터이다. 서남쪽으로 갈마음수혈의 명당이

있다. 이는 지룡으로 혼자 나왔다.



신현충이란 인물이 부모의 시신을 넷으로 나누어 한부분을 이곳에 장례하였다. 이때 그의 누이가 그

명당은 역적이 나오는 곳이므로 시신을 거꾸로 묻어라 권하였다. 신형충은 그리하면 발복이 작아지고

늦어진다하며 반대를 하고 순장을 하였다. 그뒤 신형충은 역적이 되었다.



나라에서 묘를 파헤치니 시신이 말로 변하여 무릎을 꿇고 일어나려다 사그라졌다. 일을 이루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것이리라. 이산을 마산이라 하는데 지금도 비가 오려고 하면 말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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