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면(上田面)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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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화관광과
- 등록일자 :
2001-09-28
- 조회 : 2217
상전면 사무소
상전은 진안군의 관내 지역이었다. 따라서
백제시대에는 난진아현(難珍阿縣), 757년 신
라 경덕왕때와 고려시대에는 진안현(鎭安縣)
의 지역이었다. 1895년 고종 32년 鎭安郡의
상도면(上道面)과 탄전면(呑田面)등 두개의
면으로 설치되었다.
상도면은 오늘의 정천면 월평리와 진안읍
운산리 지역이다. 즉 월평리인 오동리(梧洞
里), 월평리(月坪里), 상초천(上草川), 하초
천(下草川)과 운산리 지역인 후사동(后寺洞)
, 언건리(彦巾里), 송대리(松臺里), 유산리
(乳山里), 구운리(九雲里), 신흥리(新興里)
등 10개 洞里였다.
탄전면은 오늘의 월포리 지역으로 정사리(淨士里/ 대구평), 월포리(月浦里), 양지리(陽地里),
금단리(琴丹里), 항동(項洞), 신흥리(新興里/항동신흥)와 오늘의 수동리인 대일리(垈一里), 외
송리(外松里), 내송리(內頌里), 상산정리(上山渟里), 하산정리(下山渟里), 신저리(新田里),가막
치(加幕峙), 회사동(檜寺洞), 주평리(珠坪里), 갈현리(葛峴里),중기리(中基里)등 17개 洞里였다.
1973년 7월 1일 월평리는 정천면 관할로 하였으며 1983년 2월 15일에 정천면 관할이던 구룡리
(세동,불노티,금당)를 편입 시켰으며 1987년 1월 1일자로 운산리는 진안읍 관할로 상실하고 정
천면 관할이던 용평리(평은, 신연, 운암, 부항)를 편입시켜 현재는 갈현, 주평, 월포, 구룡, 용
평리 등 6개리에 행정리는 24개 마을이다.
특히 상전면 주평리에서 "돌칼""돌 화살촉"이 발견되었었는데 이것을 진안군 으로서나 우리
전북으로서도 귀중한 문화사적 고증자료(考證資料)가 아닐수없다. 이같은 도구는 하천(河川)을
끼고 살았던 옛 조상들의 생활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