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마이산의 지명은 신라시대에는 당시 수도였던 경주의 서쪽에서 가장 이로운 산이라 하여 서다산(西多山)이라 하였으며 해마다 이곳에서 산신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하늘로 용솟음치는 힘찬 기상을 상징한다하여 용출산(湧出山)이라 불렸다고 한다. 고려 말 이성계(조선태조)가 속금산(束金山)이라 개명하였는데 이는 마이산이 기(金-쇠의기운)가 너무 강하여 나무의 기운을 눌러 이(李)씨가 왕이 될 수 없다 하여 쇠의 기운이 강한 마이산의 정기를 묶는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이후 태종13년 태종이 몸소 진안 성묘 산에서 제사를 지낸 후 마이산을 보고는 ‘이미 이씨가 왕이 되었는데 산의 기운을 묶어둘 필요가 없다’ 하고 ‘산이 말의 귀를 닮았으므로 마이산이라 하라’ 하여 그때부터 마이산으로 부르게 되었다,

또한, 마이산은 계절별로 그 이름을 달리 부르고 있는데 봄에는 우뚝 솟은 두 봉우리가 마치 바다에 떠있는 배의 돛대와 같다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는 형상이 푸른 숲과 바위가 어우러져 용의 뿔과 같이 보인다 하여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단풍과 바위의 형상이 말의 귀와 같아 마이봉(馬耳峰)이라 부르며 겨울에는 하얀 눈 위에 솟은 봉우리가 먹물을 찍은 붓과 같다 하여 문필봉(文筆 峰)이라고 부른다.

전주에서 동쪽으로 약 32km, 대전에서 약 89km, 진안에서 남서쪽으로 약 3km정도 떨어졌으며, 백두대간에서 분기(장수군 영취산)한 금남·호남정맥의 주능선이며,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으로 산 전체가 역암(수성암, 퇴적암)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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