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읍 예리(曳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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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화관광과
- 등록일자 :
2001-10-04
- 조회 : 1372
임진왜란때 난을 피해온 창씨(昌氏) 2가구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토질이 대부분 진흙땅이고 또한 부락의 형태가 마치 거북의 꼬리와 같다하여 처음에는 예리구미(曳泥龜尾)라 했는데 그후 이곳에서 황금이 많이 나온 일이 있어 예리김(曳泥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의 명칭은 1968년에 예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80여 가구가 모여사는 큰 마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