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궁리 신고(新顧) 마을

  • 작성자 : 문화관광과
  • 등록일자 : 2023-05-22
  • 조회 : 1550
  • 읍면

    성수면

3. 외궁리 신고(新顧) 마을

① 유래와 역사

신고마을은 신리(新里), 고미동(顧尾洞), 점촌(店村)등 3개의 자역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리와 고미동의 첫 자를 따서 신고라 부르고 있다.

고미동은 연안 이씨에 의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며, 신고의 3개 자연마을 중에서 제일 먼저 형성되었다. 내동산 줄기에 위치한 고미동은 외궁리의 장수봉을 따라 마을 동쪽으로 투구봉과 검무봉이 있다. 마을 뒷산을 암여우 봉우리라 부르고, 검무봉을 숫여우 봉우리라 한다. 마을 뒷동산은 여우 한 쌍이 다정하게 마을을 돌아보고 있고, 꼬리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여우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언덕에는 예전에 탑거리가 있었으며 4~5개의 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뒷산은 늙은 여우가 제 꼬리를 돌아본다 하여 노호고미(老狐顧尾)형이라고 하며, 그래서 돌아볼 고(顧)자와 꼬리미(尾)자를 따서 고미동(顧尾洞)이라 불려왔다. 이 마을은 1808년 이전부터 있었던 아주 오래된 마을로 당시의 고씨 일가가 터를 잡고 살았다. 예부터 여우의 젖이 12개뿐이라 12가구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신리마을은 병자호란을 겪은 후 김제 조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고미동 다음으로 형성된 마을이며, 새말로 불리다가 신리로 부르게 되었다. 신리마을 뒷산은 검무봉이라 하는데, 장군이 칼을 들고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한다. 마을 앞산은 장군봉이라 하고, 이곳에 장군대좌혈(將軍大座穴)이 있다고 한다. 마을 서편에는 있는 무당바위는 무당이 이곳에서 놀다가 무당바위 아래에 있는 소에서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현재는 하천공사로 바위는 사라졌다. 무당바위 정상을 순산봉이라 하는데, 순산봉의 모습은 장군이 부하와 조회하는 형태라 한다. 마을 앞산인 고덕산이 화산이라 하여 해마다 짐대를 세웠었는데, 예전에 짐대를 세웠던 자리를 짐대백논이라 부른다.

점촌마을은 1890년 정도에는 옹기(甕器)를 굽던 곳이었고, 10명 정도가 이 일에 종사했었다. 옹기를 굽던 사람들은 주로 장독을 제작하였고, 그들은 점차로 생계의 어려움을 겪어 농사로 전환하였다. 현재 옹기공장은 폐쇄되었고 마을 이름을 점촌이라 하여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점촌마을의 터는 계봉포란(鷄峰抱卵)형국의 명당이라 한다. 마을 왼쪽 봉우리에는 산제당(山祭堂)이 있어, 예전에 제를 모셨다. 점촌마을의 서편도로 건너편에 있는 산의 지형이 제비집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연소(燕巢)라는 명당이 있다. 옛날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제비집 모양의 마을에서는 일제와 맞서 싸우는 독립운동가나 훌륭한 학자가 탄생된다 하여 마을 지명을 바꾸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② 지명

  ◦ 검무봉 : 신리마을 뒷산. 고미동에서는 풍수적으로 숫여우 봉우리라 한다. 장군이 칼을 들고 춤을 추는 형국.
  ◦ 계봉포란(鷄峰抱卵) : 점촌마을의 지리적 지세를 말한다.
  ◦ 고미골 : 고미동(顧尾洞)의 다른 말. 신리 북쪽 마을. 노호고미형의 명당이 있다 한다.
  ◦ 고미골모탱이 : 고미골에서 신리로 넘어가는 모롱이.
  ◦ 노곡 : 늙은골. 늘골이라고도 한다. 새말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 노곡안골 : 노곡제 안쪽의 골짜기. 절이 있었던 곳으로 절골이라고도 한다.
  ◦ 노곡재[신리제(新里堤), 늘골방죽] : 새말 동남쪽에 있는 못. 농업용수로 활용. 넓이 1정보.
  ◦ 노호고미(老狐顧尾) : 늙은 여우가 제 꼬리를 돌아보다는 뜻.
  ◦ 닥밭골 : 늘골 저수지 아래에 있는 골짜기 닥밭(楮田)이 있던 골.
  ◦ 무당바우 : 새말 서쪽에 있는 바위. 전에 무당이 놀다 소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 무지봉 : 무제봉(無祭峰)의 토박이 지명이다. 노곡제 서쪽 산. 극심한 가뭄에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외궁리 주민들과 같이 제를 행하였고, 1949~1959년 정도까지도 지냈다.
  ◦ 산제당(山祭堂) : 산싱당의 다른 이름. 신리마을 뒤편.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다.
  ◦ 서낭댕이 : 새말 남쪽 길가에 있는 성낭당. 큰애기죽은 무덤이라고도 한다.
  ◦ 서당골 : 고미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전에 서당이 있었다.
  ◦ 순산봉 : 신리마을 서쪽. 장군이 부하와 조회하는 형태.
  ◦ 신리(新里) : 새말, 새몰, 연지동이라고도 한다. 활목 북쪽에 있는 마을. 옛 연못자리.
  ◦ 역구실골 : 점촌 안(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수량이 풍부하여 여기서 점촌천이 시작되고, 신리와 고미동까지 농수를 공급한다. 전에 나무 땔감을 구하기 위해 자주 다녔던 길이다.
  ◦ 연소(燕巢) : 풍수적으로 산의 지형이 제비집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부르는 말.
  ◦ 작은골 : 순산봉 아래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장군봉(將軍峰) : 새말 서남쪽에 있는 산. 장군대좌혈(將軍大座穴)이 있다 한다.
  ◦ 절골 : 고미동 서쪽, 성수산 아래 위치한다. 옛날 고승(高僧)들이 수도하던 절이 있었던 곳.
  ◦ 점촌(店村) : 새말 동쪽에 있는 마을. 전에 옹기점이 있었다. 계봉포란(鷄峰抱卵)형의 마을.
  ◦ 진등날 : 장군봉 북쪽에 있는 긴 산등성이.
  ◦ 점티재 : 절티재라고도 하고 아주개고개라고도 한다. 점촌에서 중평으로 넘어가는 고개.
  ◦ 큰골 : 작은골 서쪽에 있는 큰 골짜기.
  ◦ 탑거리 : 풍수상 여우꼬리 부분이다. 사창들이 있던 곳으로, 탑이 4~5객 있었다 한다. 탑이 세워진 곳은 탑거리·탑선거리라 부른다.
  ◦ 투구봉 : 고미동 동쪽에 있는 산.
  ◦ 평논 : 점촌 북쪽에 있는 들. 평평하게 생겼다.
  ◦ 할미재 : 고미동에서 산주로 가는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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