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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312 와룡암(臥龍庵)과 김중정(金重鼎) 관리자 07/13 11:05:36 701

공은 호를 긍구당(肯構堂). 자를 자삼(子三)이라 했으며 1602년(선조35년) 한성의 황화방(皇華坊)에서 태어나 1637년 (인조 15년) 서른여섯 되던 해에 조부 김충립을 따라 주천면에 들어와 운일암 반일암의 선경에 마음을 달래며 조용히 후학을 가르치다가 일생을 마쳤다. 

1654년 (효종 5년) 공이 53살때 와룡암 서제를 세웠고 89살에 죽으니 용담 밤골에 묘가 있으며 대사헌 박성양이 비문을 쓴 묘비가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친명파의 한사람인 공은 사림에 묻힐것을 각오하고 한때 충남 연산에 머물다가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주천면에 들어 온것으로 전해진다.

주양리는 일찌기 주잠이 잠시 살다 간 곳으로 그 주위의 산천 이름이 명덕봉, 명도봉, 화산봉,주자천 등 명나라를 동경할수있는 지명이며 수려한 산수에 애착을 느껴「쌍고도덕 대명일월(雙高道德 大明日月)」 이라 자위하며 이곳에 정착하였다.이때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의 벼슬을 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은거 하게된 것이다.

그의 저서는 후세에 길이 전할 문헌이 많았으나 와룡암 서제가 천변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수해에 유실되고 전해오는 것은 와룡암 서제에 걸려있는『긍구당서』(肯構堂書)와 시 두수,그리고 용담와룡암
서제 상량문 뿐이니 애석한 일이다. 공은 오로지 후진교육의 일념으로 장서각을 와룡천변에 세우고 교육에 힘썼다.

와룡암은 마치 용이 도사리고 앉은 형용을 한 장엄한바위와 바위사이에 맑은물이 못을 이루어 낚시터로 알맞고 그 기묘하고 웅장한 바위 위에 세워진 기정 와룡암에 세워진 장서각은 원래 강건너편에 세워진 것을 물을 건너며 내왕하기가 불편하다고하여 김상원이 1827년(순조 27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축하였다. 
이 정자의 기정 와룡암의 세 현판은 영조때 이조판서를 지낸 도암 이재(陶庵 李縡)의 친필이며 그외 큰 글씨는 김기열의 친필이다. 

이 와룡암은 지정문화재 이외의 문화재 건조물 제18호로 1975년 2월에 지정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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