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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313 왜장을 감동케한 효자 신의련(愼義連) 관리자 07/13 11:06:08 543

호는 미계(美溪), 본관이 거창(居昌)인 공은 1581년(선조 14년) 백운 노촌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의 병 구완을 위해 한 겨울에 꿩과 잉어를 구하여 간호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공은 난중에도 부친의 간호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인근 주민들은 물론 머릴 경향각지에서 난을 피하여 공이 살고 있는 동편 깊숙한 산골로 모여들었으니 오늘의 비사동 골짜기였다.노략질에 혈안이 된 왜군은 이곳까지 침입해 와서 마침내 공의 집에 몰려 들었다.
이 때 공은 방문앞을 가로 막으며 "나는 죽어도 좋으니 병석에 누워계신 우리 부친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공의 효도에 감동한 왜장은 해를 끼치지않고 다만 공의효성을 실제로 보기위하여 손가락을 깨물어 「효자 신의련」다섯자를 써 보라고 했다. 공이 다섯자의 혈서를 써서 왜장에게 주니 뜰에 불을 피워 살랐으나 「효자 신의련」 다섯 자는 불타지 않고 종이만 타버리고 글자가 하늘로 올라가 버리지 않는가? 이를 본 왜장은 하늘이 내신 효자라고 감탄하면서 귀중품을 주고 표방을 써 붙였다 한다.<이 곳은 하늘이 아는 효자가 살고 있으니 침범하지 말라>동구밖에다 이렇게 써 붙이고 왜군이 물러가니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1만여명이 무사히 피난을 하였다 하여 그후부터 이 골짜기를「만인동」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정유재란에도 왜적이 침범하지 않았는데 이역시 공의덕이라 했으며 미계촌 앞에 높이 솟아있는 산을 덕태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미계촌은 지금의 백운면 노촌이라고 한다. 나라가 평온해지고 공이 죽은 후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고을 원님이 임금님께 고하니 선조임금은 종팔품에 해당하는 수의부위(修義副尉)란 벼슬을 증직으로 내리셨으며 효자각을 세우게 하였다. 

1869년(고종6년)에 효자각 바로 밑에 정자를 건립하고 영모정이라 이름지어 공의 후손 신씨 문중에서 보호하고 있다. 영모정에는 참새가 많은데 참새도 효심을 아는지 영모정에는 똥을 싸는 일이 있지만 효자각에는 똥을 싸지 않은 것을 보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경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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