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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319 조선말 교육에 힘 쓴 임호진(林濠鎭) 관리자 07/13 11:07:20 553

농산촌 (農山村) 은 / 남으로 터지고
조림촌 (照林村) / 동편에
흥학당 (興學堂) / 높은 집은 / 경치가 / 좋구나
성주 (聖主) / 옥녀 (玉女) / 국사 (國士)의
세봉우리 속 / 편안한 터에
앞내 / 뒷내 / 두 줄기물 / 끊임없이 / 흐른다
하늘은 / 영지 (靈地) 를 / 열어주니 / 신공 (神功) 이 / 쌓였고
땅은 / 명당 (明堂) 을 / 접하니 / 서기 (瑞氣) 가 / 통하노나
그뉘 / 이집을 / 경영한 뜻 / 묻거든
내 / 늙은 이가 / 바란대로 / 뜻한대로

이 글은 1836년(헌종 2년)에 용담현 조림리에 흥학당이라는 서당을 짓고 그 낙성에 붙인 임호진 선생의 글이다

선생의 자는 찬증(燦增)이요 호는 모와(慕窩)며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백호 임 제(白湖 林梯 1549~1587)의 7세손이요 기원(起遠)의 아들이다.

선생은 나주(羅州)에서 용담현 골짜기인 조림리로 이거하여 온지 4~5대만에 후진양성에 뜻을두어 경내 뜻있는 사람으로 더불어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하여 1824년(순조 24년) 4월에 흥학계를 조직하여 전곡을 저축하여 전답을 사고 처소를 마련하여 누구나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무료로 글을 배울수 있도록 하기에 하기에 갖은 노력을 한 끝에 1832년(순조 32년) 6월에 11간의 흥학당을 짓기 시작하여 1836년 (헌종 2년)에 완성하게 되었다. 이후로 선생은 십여년간 이 지방 후진양성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가 1847년 (헌종 13년)에 별세하니 묘(墓)는 상전면 지사거리촌 부귀산아래에 있으며 선생의 아들 임철한이 헌종 때에 진사로 선생의 유업을 이어받아 장학계를 확장시켜 지방발전에 많은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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