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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330 한말(韓末) 거유(巨儒) 이도복(李道復) 관리자 07/13 11:09:19 662

선생의 자는 양래(陽來)요 호는 후산(厚山)이며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고려정당문학봉성산군문열공(高麗政堂文學封星山君文烈公) 매운 이조년(梅雲 李兆年, 1269~1343)의 후예로서 1862년(철종 13년)5월 28일 월암공 동범(月庵公 東範)의 아들로 단성현(丹城縣) 양명산아래 신안동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곧고 재주가 비범하여 사우 (士友)들의 추종을 받았고, 1882년(고종 19년)에 연재 송병선의 문하에서 논어와 춘추를 읽고 대의를 깨달았다.1888년(고종 25년)에 면암최익현을 사사하여 수신사명(修身俟命)이라는 네글자의 교훈을 받았으며 한우산, 정재규 등과도 교류하였다. 

1903년(광무 7년)봄에는 간재전우를 만나니 간재도 선생을 매우 소중히 여기었고 이후에 많은 교류를 가지게 되었다. 1905년 (광무 9년)에 면우 곽종석을 만나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춘추대의로 천하를 안정시킬 정기를 불러일으켰으나 사세를 얻지못하고 그해 5월 송심석과 함께 만동묘에 들어 연재집을 교감하여 간행하였다. 그후 호령사림(湖嶺士林)을 모아 계를 맺고 1911년에 고향인 신안동에 수운정을 지어 은밀히 민족정기를 불러 일으키고 유학진흥에 진력하니 당시의 거유 곽면우도 선생을 내방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산높고 / 물 맑은 / 유서 깊은 / 이곳에서 
금서(琴書)로 / 외로히 / 망국한(亡國恨) / 달래노니 
속깊은 / 선비들이 / 절의(節義)로 / 뭉치노나 
선생의 / 굳은 마음 / 내 짐작함이라 

1919년에는 서울에 올라가 이완용, 김윤식 등 칠적(七賊)을 토벌하자는 글을 종가에 걸었고 금곡리에 들어가 송나라때 의사 홍냉산이 휘종에 고한 고사를들어 신릉부일편을 지었다. 그러나 망국의 설움과 비분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던지 그 뒤 영호남의 유서깊은 고적을 일일이 답사한 뒤에 1925년 봄에 마이동천의 구곡형승을 즐겨 이산구곡가를 짓고 이곳에 머물기로 작정하여, 그 이듬해인 1926년 이산정사에 은신하며 이 고장의 정신적지주로서 일제의 온갖 탄압속에서도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데 노력하였다. 저서는 후산집 11궘이 있다. 

1938년 윤7월8일 77세를 일기로 작고하니 현재 마령면 평지리 모사실에 있는 영곡사에 선생의 스승인 연재, 면암과 함께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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