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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337 효성 지극한 유림 전 인권(全麟權) 관리자 07/13 11:10:32 652

선생의 호는 송파(松波),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린임금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벼슬을버리고 마령에 은거했던 호조판서 극례의 16대손으로 1890년(고종27년)마령면 오동리에서출생했다. 어릴때부터 총명하여 학식이 두터웠고 친모와 계모가 위중하자 손가락을 깨물어 수혈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효행이 세상에 알려져 유림들의 효천(孝薦)이 여러번 있었으나 한일합방 경술년의국치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시기라 포상을 받지는 못했다. 

선생은 부친상을 당하여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초빈(草殯:시체를 묻지않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안치) 으로 3년상을 마치는 동안 하루도 걸르지 않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더우나 추우나 초빈(草殯)곁을떠날 줄 모르고 어버이가 주신 손톱과 머리를 깍지않고 생전에 모시던 그 정성 십배더하여 출입을 금하고뼈를 깍아내는 지극한 효행의 고행을 닦았다.

이 지방 명문인 이병연, 정종엽과는 막역한 사이로 도의의 교분을 맺고 높은 학문을 갈고 닦아 제자가 수없이 따랐다. 평소 전남의 독립투사 전기홍과 전북의 독립투사 이석용과도 뜻을 같이하며 가산을 털어 거사 자금을 대는 등 물심으로 협조를 다한 숨은 애국지사였다. 뿐만 아니라 왜경의 횡포를 배격하는데도 앞장섰고 향교의 임원이 되어 여씨 향약을 시행하고 공민학교를 세워 영재를 양성하는등 지역개발에 기여하였다. 또한 이곳에 이산묘를 세워 민족정신을 함양하는데 이바지한 공로가 지대하였으니 김구,이시영 등이 글을 보내어 선생을 칭송하기도 했다.

1968년 9월 12일 79세를 일기로 타계하니 선생의 뜻을 길이 살리기 위해 전국 유림에서 기금을 모아 백운평장리 가전부락 덕태산 밑에 양택을 잡아 정려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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