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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478 역말(驛村) 단양리(丹陽里) 관리자 07/13 11:46:00 561

옛날 우리나라의 교통은 도보가 아니면 말을 타든지 교자(轎子)를 많이 사용 하였다. 화물의 운송은 인력 우마 이외에 관에서는 대차(大車) 편차(便車) 곡차(曲車)홍륜(紅輪)등을 사용했으나 빈간에서는 그런것을 사용할 수 없었다. 도로의 거리표시는 주족(周足) 여섯자를 1보(一步)라고 하였고 360보를 1리 30리를 1식(息)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경복궁 앞의 원표 (元標)를 기점으로 하여 10리마다 소후(小帿)30리마다 대후(大帿)를 두고 후에는 이수(里數) 이명(里名)을 새기는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니 오늘 날과 다를바 없다 하겠다. 다만 미터법으 통일한 것으로 발전한 것이리라. 또한 주요 도로에는 대략 30리마다 역을 두어 마필(馬匹)과 역정(役丁)을 갖추어 공문전달, 위급전달을 고(告)하는 외에 공무여 행자에게는 소정의 편의와 의무를 다하고 진상관물의 수송을 담당하였다.

역마의사용에는 마패(馬牌)를 사용하였는데 병조에서 마문(馬文)을 기록하고 당서원(堂瑞院)이 이를 발급하였다. 역에는 역장, 역리,역졸을 두었고 수개내지 수십개의 역을 한 도(道)로 하여 종6품의 찰방 과 종9품의 역승이 이를 관장케 하였다.

역은 고려때에는 520개, 조선시대에는 540개이었고 우리고장의 역은 고려때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던 전주 - 진안 - 장수로 연결되는 단령역과 금산 - 용담 - 진안으로 연결하는 달계역이 있었다.

1699년에 엮은 진안군지에 의하면 우리 고장에는 단령역과 달계역이 있다고 하였는데 오늘날의 진안 읍 단양리 원단양과 용담면 월계리이다. 단령역은 재현 남 5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5리이면 지금 이수로 2km이니까 단양리에 딱 해당한다. 지금도 60대 이상은 단양리를 역말이라 칭하니 바로 역촌(驛村) 이 되는 셈이다. 단령역은 금산 제원도찰방 속역으로 열리 19명 말 5필이 있었다.

달계역은 역시 금산 제원도찰방 속역 이었다. 이 역에서는 또한 공문서의 전달을 하였다. 공문서를 발송할때는 공문서를 가죽부대에 넣어 역졸이 릴레이식으로 전달 하였다. 용건의 완급(緩急)은 가죽부대에 단 방울의 수효로 표시하였는데 지급은 3개, 보통은 2개, 평상은 1개의 방울을 달았다. 또한 계절에 따라서 갈수 있는 이정을 정하였는데 2월에서 7월은3급은 6역, 2급은 5역, 1급은 4역을 가야 하였고 8월부터 정월 까지는 3급 5역, 2급 4역, 1급 3역으로 하였다.

원(院)은 고려와 조선조때 역과 역사이에 두었던 것이었다.이곳은 출장하는 관원을위한 국영의 여관이었다. 역시 1699년 진안군지 구본 병안(兵案)조를 보면 원주 52명으로 나와 았음을 볼때 원의 수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헌상으로 볼때 우리고장에는 2역 15원이 있었는데 1699년 현재는 1역5원만이 유지되고 나머지는 모두 폐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운영되고 있었던 5원은 율현원 초천원 영천원 가정원 백암원 등이다. 폐지된 원은 동원(東院), 남원(南院), 요광원(要光院), 좌산원(佐山院),삼기원(三崎院) 강유원(康乳院)등이다. 지금도 진안읍 오천리, 백운면 백암리, 두곳에서 원촌(院村)이란 지명을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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