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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504 명당(明堂)과 진안(鎭安) 관리자 07/13 11:50:24 844

어느때 누구인지는 몰라도 옛날 서울에 비범한 재주를 가진 벼슬아치 한분이 있었는데 주역을 통달하여 세상 돌아가는 대강의 이치는 알고 있었으나 전라도 산에서 나는 산갈치를 먹어야만 지리(地理)와 천기 (天氣)에 능통할 수 있었다 한다.

그는 임금에게 외직으로 나가고 싶다는 것과 전라도로 가고 싶다고 청했다. 그는 소원이 성취되자 그는 전라도에 부임하기 앞서 주술로서 전라도 서쪽바다의 모든 고기들을 제주도로 가게끔 하니 푸성귀에 나물만 들어 왔따.초조해 하던 관속들은 감사에게 대접할 고기를 잡아올리라고 각 현감에게 명령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어느날 민가의 울타리에 갈치가 걸려있어 잡아 왔다는데 머리는 뱀 형상이요 꼬리만 갈치였다.

그래서 설마 감사가 그것을 분간할 리 없겠지 하고 보기흉한 머리는 잘라버리고 꼬리만 대접하자고하여 감사의 밥상에 고기가 올려지게 되었다. 감사는 자세히 보니 분명한 산갈치였으나 머리부분이 없어 물으니 개수통에 버렸다는 소리를 듣고도 상에 올리라고 명하엿다. 그러나 개수통에 버렸던 산갈치 머리는 찾을 수가 없었다. 감사는 크게 실망하고 꼬리만 먹을수 밖에.

산갈치의 머리는 천기에 능하게되고 꼬리는 지리에 능하게된다 하는데.그래도 감사는 지리에 능통하다는 꼬리만 이라도 먹게되어 조금은 위로할 수 있었다.

그 뒤로 그는 전라도 각 고을과 마을을 두루 살펴보며 마을 이름을 붙여주고 명당자리를 보는 등 풍수지리와 현감들의 치정을 살펴 보았다.

진 안 안천에는 배목이 있고 정천에는 물통골이 있고 상전에는 송대(배를 보낸다는 송배의 와음)가 있고 송대와 접해있는 진안의 되재(돛대가 변해서) 그리고 정천,주천,안천의 삼자천등 이름을 붙였다.상전의 월포(달뜨는 포구)등의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큰 댐과 관련 지을 수 있다.

또 진안에는 여덟군데의 명당이 있는데 1. 노래제 2.송대 3. 반원 4. 동창 5. 강정 6. 평장 7. 좌산 8.좌포 등을 꼽았다.

그 리고는 왕후 장상 지혈은 네곳이 있음직 하다는 여운을 남기고 떠났다. 그런뒤 수십년이 흘러 신현충이란 인물이 나왔는데 그의 양팔 겨드랑이 밑에는 비늘이 나 있고 날개가 있었다. 그는 활과 창 다루는 솜씨가 비범하고 무리로 무술을 익히니 나라에서는 심상치 않게 여겨 그를 죽이고 망덕뒷산, 황산리 용마혈, 정천갈두, 월평리 등의 무덤을 파헤치고 숯불로 떴다.

그리고 또 수백년 후에 조정에 한 신하가 있었는데 용모가 비범하고 재주가 비상하며 그를 추종하는 무리도 영특한 인재들로 나라에서는 역모지상이 틀림엇다고 하여 그를 하옥시키고 심문하니 고향은 전라도 월랑현 (진안의 옛이름)이라 한다. 진안 강령골재를 살펴보니 완전히 좌청룡 우백호 사대문이 완연한지라 자를 가지고 이리저리 재보았지만 그곳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런데 큼직한 자벌레가 풀속으로 들어 가는 것을 보고 그곳을 파 헤치니 오래된 유물이 나왔다. 유골의 오른쪽눈에다 나무가지를 꽂아보니 감옥에 갇힌 그는 갑자기 오른쪽 눈이 아프다며 뒹굴었고 왼쪽눈에 꽂으니 왼쪽 눈을 감아쥐며 신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파헤치고 숯불로 석달 열흘을 화기로 다스렸다.

그런 뒤 그를 불러 추궁하니 그와 그의 부친이 어두운 밤에 전주를 가려고 강령골재를 넘어가는데 난데없이 범이 나타나 그의 아버지는 호식을 당하고 그는 기절해버렸는데 나중에 깨어보니 이지경이 되었음을 알았고 아버지 시신을 자리에 치장하였다고 한다.

몇 백년이 또 흘러 동학혁명때 농민군과 일본인이 합세한 관군이 싸웠다는데 동학농민군은 진안국민학교 뒷산에 관군은 성묘산에 대치하고 공방전을 하는데 일군의 총기에 동학농민군은 패퇴하였다.

원불교당 부근은 일본군이 쏜 총탄에 의해 쑥밭이 되고 납탄이 땅에 많이 박혔는데 이때 그 자리의 기운이 모조리 빠져 나갔다고 한다.

옛 부터 우리나라는 부모에 대한 효도가 나라 충성 못지 않게 관직에 나갔다. 친상을 당하면 정직이되어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3년거상을 정성껏 하였고 효자가 아니더라도 부모 산소의 성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3년동안 여막을 짓고 머리를 풀고 허름한 옷을 입고 시묘하는 보통이었으며 임금은 효자를 찾아 정려하고 포상하였다. 그리고 외적의 침입시 효자가 난 고을은 침범하지 않고 지나첬다. 이렇게 어버이 섬기는 마음과 가문의 영달을 위해 명당을 찾으려는 노력은 이야기에 이야기를 낳고 효심은 애국심으로 연결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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