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및 연혁
    • 백제시대 : 물거현
    • 신라시대 : 청 거
    • 고려시대(1313년) : 용담 개칭(현령)
    • 조선시대 태종13년(1413년) : 현감 강임(현령관)
    • 조선시대 효종 7년(1656년) : 현감 복승
    • 조선시대 고종32년(1895년) : 용담군 개칭
    • 1914년 3월 진안군과 통합 : 용담면 개칭
    • 1997년 10월 3일 : 청사신축 이전(옥거리→송풍리)

 

  • 용담은 삼국시대에는 물거현(勿居縣)이라 불렀으며 757年인 통일신라시대에는 청거(靑渠)라 불렀으며 진례현(오늘의 금산)의 속현이 되었다. 1413년(太宗13年) 남원도호부의 9현중 하나로 현감을 두었으나 1656년(孝宗7年)에는 다시 현령(縣令)으로 승격시켰으며 명칭도 옥천(玉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애초에는 군내면, 동면, 서면, 남면, 북면 등 5개면이었는데 고종 32년에 용담군이 되어 9개면 143리를 관할 하였으니 소재지인 군내면, 지금의 동향면인 일동면, 이동면, 주천면이된 일서면, 이서면, 정천면인 일남면, 이남면, 안천면인 일북면, 이북면 등 이었다.
  • 1914년에는 진안군에 통합되어 용담면이 되었다. 용담면은 구 용담군의 군내면인 월계리, 호계리, 수천리, 와룡리와 이북면 일분인 송풍리가 관할구역이 되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용담의 백성은 소박하고 꾸밈이 적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주기(州記)에도 '땅은 궁벽하고 하늘이 깊으며 바위는  기이하고 나무는 노후하다. 구름다리가 산에 걸리고 돌길은 시내에 연해있다. 백성은 드문드문하여 푸른절벽이 만겹으로 겹치있다.'고 하였다. 또 용강산(龍岡山)과 마산담(馬山擔)을 소개하고'현(縣)의 동남쪽 두물이 서로 모이는 사이에 용담이 있어 현명(縣名)으로 취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본현황
    • 면 적 : 4,349ha(전52, 답83, 임야4,022, 기타192) 진안군의 6.9%
    • 가구및인구 : 481세대, 861명(남 412, 여 449)
    • 행정 구역 : 6개 법정리 16개마을
    • 교육 시설 : 1개소 32명(유치원 6명, 초등학교 18명, 중학교 8명)
    • 문 화 재 : 태고정(지방문화재자료 102호), 옥천암(전통사찰)
지역특성
  • 표고 217m의 북부산악권에 속하며, 생활 근거지는 인접한 충남권 (금산, 대전)으로 용담댐 주변 호반 관광단지로 개발여건이 좋은 지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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