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포리 포동(浦洞) 마을

  • 작성자 : 문화관광과
  • 등록일자 : 2023-05-22
  • 조회 : 1342
  • 읍면

    성수면

18. 용포리 포동(浦洞) 마을

유래와 역사

마을의 형성 연대는 1690년경, 조선 12대 인조 당시, 천안 전씨가 일가를 이루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전씨가 정착하여 살 때 마을에 큰 당산나무가 있었는데, 1945년에 나무가 3일 밤을 울더니 마을에 질병이 만연하여 망했다고 한다. 잿마당의 터에 가면 전씨의 묘가 집단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그들의 일가가 마을에서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포동마을은 예전에는 강가의 포구(浦口)였다고 하여 개울마을로 불렸었다. 그 후, 조선 제19대 숙종때 분성 배씨와 순흥 안씨가 다시 터전을 잡으면서 한자화 되어 포동으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

포동마을은 풍수적으로 뒷산은 용이 구름을 타고 등천했다는 운중반룡(雲中盤龍)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지며, 마을에서 개천 건너편인 임실 관촌에는 호랑이혈이 있다 한다. 또 마을 어귀 숲의 지형은 개가 숨어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뽕나무를 많이 재배하여 양잠시범마을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과거 사랑목장이 있는 곳인 반룡과 포동마을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가장골이라 하였는데, 일본인들이 와서 묘지를 공동으로 형성한 곳이다. 지금 그곳은 밭으로 개간되어 묘지만(20여기) 남아있다.

 

지명

  ◦ 가장골 : 반룡과 개울 사이에 있는 골짜기. 과거 사랑목장이 있었던 곳.
  ◦ 구적바우 : 반룡 서남쪽. 용아가리 앞에 있는 개구리 같이 생겼다는 바위.
  ◦ 말구리재 : 말구를재, 마전치, 말궁굴재라고도 한다. 개울 북쪽에서 좌포리 양화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양화에서 임실군 관촌으로 가는 길이다. 매우 가파르며 지금은 좌포터널 위에 해당된다. 험하고 비탈져서 말이 굴렀다고 한다.
  ◦ 망덕거리 : 포동마을 입구. 회관 주변에서 빨래터 옆 방앗골이었던 곳까지를 말한다. 옛날 5가구가 살았다.
  ◦ 바산골 : 동네 뒤쪽 우측 골자기. 배씨의 9대 선산묘가 있다.
  ◦ 방미산 : 배미산, 배를 맸다고 하여 부르는 이름이며, 배같이 생겼다 한다. 높이 568.6m, 성수면 용포리와 좌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
  ◦ 방죽굴 : 가장골에서 좌쪽으로 들어가는 골짜기. 전에 방죽이 있었다.
  ◦ 배목재 : 배를 매는 말뚝. 현재 갯가의 고을.
  ◦ 병풍바위 : 병풍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
  ◦ 잿마당 : 윗잿마당-북창 이씨 집단묘가 있고 산막으로 가는 구도로 아랫잿마당-천안 전씨 집단묘지.
  ◦ 찬시암거리 : 방죽골 너머 찬물이 흐른다는 거리.
  ◦ 체빈터골 : 과거 나인농장(사과) 밑.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묻지 않고 나무나 땅 위에 올려 거적으로 덮어서 두었다가 육탈이 된 뒤에 매장을 했다.
  ◦ 터골 : 과거 나인농장 있는 골짜기.
  ◦ 할미바위 : 할머니가 엎드려 대수리를 잡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 화산골 : 터골 위 일제시제 일본인들이 과수농장을 했던 곳이다. 배, 사과 맛이 뛰어나 전주까지 소달구지에 실어 날랐다 한다.
  ◦ 회깃날 : 뒤재봉에서 내려온 끝자락. 포동마을 입구를 이른다.
  ◦ 황새목재 : 황새목, 황새고개라고도 한다. 황새의 모가지 같이 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넘어가면 원좌산이 나오고 백운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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